저의 엄마에 대한 기록을 하고싶어 쓰기 시작한 글입니다.
글을 쓰는데 마음을 너무 쓰고, 그러고나면 하루를 앓아누울 만큼 에너지 소모가 많아서 멈춘 상태이지만
언젠가는 이어서 완성하고 싶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진다는 말, 세월이 지나면 잊혀 진다는 말은 거짓말 이었다.
내가 살아가는 오늘이 엄마의 과거였고, 내가 살아갈 미래가 엄마가 살아냈던 오늘인 이상 딸에게서 엄마는 잊혀 질 수 없는 존재였다.
슬픔도 그리움도 정말이지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은 채, 엄마가 없는 나 혼자만의 시간은 지나갔다.
엄마의 삶이 끝나던 그 날 새벽부터, 아니 꺼져가는 엄마의 생명을 보게 된 후부터 죽을 듯이 나는 울었고, 그 울음은 지금 내가 우는 것이 끝나버린 엄마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 보다 엄마 없이 살아갈 내 삶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임을 알게 된 순간에야 그칠 수 있었다.
버스에서도, 길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렇게 울었다. 누가 보고 있든 누가 뭐라 하든 그렇게 울다가 어느 순간 “나는 이제 어쩌라고”라는 내 목소리를 듣고 멈추었다.
그 이후 그리움이 너무 무거워 가슴이 내려앉을 것 같을 때는 있었지만 울지는 않았다. 내가 첫 아이를 낳기 전 까지는.
ep.1
24살에 엄마와 헤어졌다. 오래도록 떨어져야 하는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26살에 결혼을 했다. 결혼 또한 이렇게 빨리 할 줄은 몰랐다. 내 결혼식에 엄마가 없을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고, 내 남편을 엄마가 못 만날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랬다. 엄마가 떠났던 여름이 끝날 때 쯤 엄마가 보고 싶다며 주저앉아 우는 나를 낯설게 보며 지키고 있던 사람과 결혼을 했다.
그 사람은 우리엄마가 만든 ‘닭도리탕’과 ‘양배추사라다’를 먹어보지 못한 남자였다.
엄마는 집에 손님이 오는 걸 좋아했다. 아빠가 일을 나가신 주말에는 엄마와 나, 동생 셋이 먹을 수제비를 만들면서도 밀가루 한 포를 다 써서 반죽을 하고는 반죽이 많다는 핑계로 동네 아주머니들을 모으시는 분이었다.
특히 더 반가운 손님이 올 때 엄마는 꼭 ‘닭도리탕’과 ‘양배추사라다’를 만들었다. 닭볶음탕, 양배추 샐러드라고 해야 하겠지만 내 기억 속에 남은 건 ‘닭도리탕’과 ‘양배추사라다’이다.
엄마가 과일까지 넣은 ‘양배추사라다‘를 만든 날에 오는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꼭 롤케잌을 손에 들고 왔다. 딸기잼이 들어간 것과 크림이 들어간 것이 있었는데 나는 크림이 가득 들어있는 롤케잌을 좋아했다. 어느 날 동네 빵집에 처음 보는 롤케잌이 있어 사간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그 롤케잌을 제일 좋아했던 것 같다. 호두 같은 것이 들어간 롤케잌이었다
아무튼, 과일이 들어간 ‘양배추사라다’와 롤케잌의 상관관계는 엄마가 항암치료를 받기위해 병원에 계실 때 알게 되었다.
항암초기에는 엄마를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엄마가 그걸 원했다. 엄마 병실에 오는 사람은 아빠와 나, 동생이 다였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찾아왔는데 손에 익숙한 롤케잌이 있었다. “아이고, 와 이제야 연락을 했노, 보기가 힘들어 무슨 일이 있는가 했더니 와 이라고 있노, 아나 이거 빵 사왔데이 니 좋아하는 걸로 골라 왔데이 이래 주사 꽂고 밀가루 먹어도 되는긴가 모르겠구마는 그래도 좋아하는걸 무야지, 이거 쪼매 먹어 보그라.”
그렇게 엄마를 보자마자 괜찮은지 많이 아프지는 않은지 묻지도 않고 롤케잌 부터 내미는 분께 첫 마디로 점심은 먹고 왔는지 물어본 엄마는 얼른 가서 김밥이랑 쥬스를 사오라 했다. 혹시 과일이 있으면 과일도 사 오라고 했다.
엄마는 김밥과 바나나, 오렌지쥬스를 꺼내며 그 분께 미안하다 했다. 사라다 라도 해서 줘야하는데, 끼니를 이렇게 내줘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 모습에 화가 났다. 엄마를 보러 오셨다는 그 분은 왜 한마디도 엄마 걱정은 하지 않는지, 엄마는 왜 그 분 끼니를 챙기는지 자기는 밥도 제대로 못 먹으면서 도대체 왜 남한테 밥을 못 차려 줘서 미안하다고 하는 건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 분이 가시고 나서, 롤케잌을 먹는 엄마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살짝 지어진 미소, 하지만 어쩐지 뜨거워 보이는 눈가를 보고서야 그 롤케잌이 엄마에 대한 걱정이며, 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우리 집에 왔던 손님들의 손에 들려있던 그 롤케잌은 빵을 좋아하는 엄마에 대한 관심이었으며 애정이었다. 나와 동생에게 줄 과자를 사오는 손님도 있었고, 아빠와 같이 마실 술을 사오는 손님도 있었다. 그 중 롤케잌을 들고 오는 손님은 특히 엄마를 좋아하는 분들이었구나. 그 분들의 마음을 알기에 엄마는 더 정성들인 밥상을 준비한 거였구나. 그 분들은 엄마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주었구나. 빵을 좋아했던 엄마가 빵집에 가서도 쉽게 사지 못했던, 손님이 사오는 날에나 먹을 수 있었던 그 롤케잌은 이제 나에게는 보기만 해도 목이 메이는 음식이 되었다. 지금 엄마가 있다면, 있기만 한다면 내가 제일 맛있는 롤케잌 만들어 드릴 텐데. 나는 남들도 했던, 롤케잌으로 엄마를 기쁘게 하는 그 일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엄마가 만들어 주는 ‘닭도리탕’과 ‘양배추사라다’를 내 남편과 내 아이들은 먹어보지 못한다. 이게 참 마음이 아프다. 너무 서럽고 억울하고 원망스럽다.
내가 제일 좋아한 음식이 엄마가 만든 ‘닭도리탕’이었는데 엄마가 떠나고는 거의 먹지 않았다. 몇 번 먹을 일이 있었지만 맛이 없었다. 그래서 먹지 않았는데 첫째를 임신했을 때 너무 먹고 싶은 날이 있었다. 닭볶음탕 잘 한다는 식당을 아무리 찾아다녀도 엄마의 ‘닭도리탕’ 만큼 맛있지 않았다. 그 맛을 기억해서 만들어 봐도 그 맛이 아니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운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구나. 엄마의 ‘닭도리탕’이 먹고 싶어서 울었었구나. “왜 빨리 죽어서 나 입덧하는데 닭도리탕도 못만들어 주냐, 빨리 죽을꺼면 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쳐 주기라도 했어야지 왜 부엌에는 들어오지도 못하게 해서 내가 먹고 싶은 것도 못해먹게 만들어 놓고 죽었냐” 소리까지 질러가며 울었다. 엄마가 그리워서 우는게 아니라 ‘닭도리탕’이 먹고 싶어서 우는 거니까 마음껏 울었다.
ep.2
여름,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가슴이 먼저 반응하는 2007년의 잔인했던 여름.
그리고 그 해 가을,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코스모스였음을 알게 된 가을.
아니 진작 알고 있었다.
누군가가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더라면 코스모스라고 대답 할 수 있었을 테지만, 그저 엄마가 좋아하는 꽃이 코스모스였지 하며 떠올린 적은 없었다.
늘 그랬다 엄마가 싫어하는 것은 잘 알고 피해왔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먼저 알고 찾지는 않았다.
반면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귀신같이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색깔, 음식, 책, 노래, 연예인, 작가, 무엇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지, 어떤 말을 들으면 행복한지 다 알고 있었다.
엄마가 너무 다 알고 있어서 엄마가 떠나고 난 후 다 잃은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색깔의 티셔츠를 사주는 엄마가 없어서 무슨 색을 좋아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주는 엄마가 없어서 그 노래를 어떻게 부르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엄마가 없어서 어떻게 사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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