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 엄마가 엄마에게

[엄마가 엄마에게] 집중치료실에 입원했었던 둘째

Bo.kyung 2017. 12. 21. 00:18
반응형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 있었던 둘째 우리집 일이 될 수 있었던 사건


예민한 사건은 포스팅하지 않으려고하는데.. 며칠 전 부터 들려오는 뉴스는 정말 눈물이나고 화가난다. 내 자식도 있었던 곳이고 우리집 일이 될 수도 있었던 사건이기에 더 가슴아프고 억울하고.. 뉴스를 볼때마다 눈물이 난다 특히 그 작은 상자를 볼때마다..겨우 저 상자에 들어가는 생명을 보내야 했다는 것이 정말 실망스럽다. 나는 흔히말하는 팔삭둥이 미숙아였다 임신중독증이 심했던 우리엄마는 병원에 입원해계셨고 엄마의 증세가 점점 심해지자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유했다고한다. 둘 다 보내지 않으려면 이제 수술을 하시는게 좋겠다고... 그러나 수술하기전에 아빠는 만약의 경우 산모아 태아 중 한명을 선택해야 한다면 누구를 선택할꺼냐는 질문을 받았고 그 경우 산모가 우선이며 태아를 지키지 못하더라도 책임을 묻지않겠다는 각서를 썼다고하셨다 그게 정말 아빠표현대로 각서인지 정확하지는 않으나 내가 태어나기 전 아빠는 그리고 엄마는 엄청 가슴아픈 대답을 해야만 했다는건 확실한듯하다. 어쨌든 아빠는 엄마와 나를 다 만날 수 있었다 다만 엄마는 그 이후 평생 몸이 붓고 관절이 아프고...임신중독증 후에도 몸조리를 제대로 못한 후유증을 얻으셨고 나는 일주일 인큐베이터에 있다 나와서 두돌까지 이틀에 한번은 병원에 갔었다고한다. 아마 경제적 여건으로 일주일이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한달은 있어야했을 미숙아였다. 그래서 두돌까지도 엄마는 나를 들쳐업고 병원에 달려가는게 일이었고 당시 근처에 살았던 친척들은 내가 곧 죽을 줄 알았다고한다. 돌이 되어서야 사람같았다고.... 두돌, 세돌이 지날때마다 애미가 저 새끼를 기어이 살려낸다고 대단하다 하셨단다.

<집중치료실에서 퇴원하던날>

우리 둘째는 저녁 7시가 조금 넘어 태어났다. 나는 자연분만 후 태반배출이 잘 되지 않아 긁어내는 과정이 한시간정도 있었고 병실에 올라온 시간은 거의 9시가 다 되어서였다.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나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동으로 왔던 산모는 내가 출산하고 난 후 분만실에 들어왔었다고한다ㅎㅎ 출산시간은 나와 한시간가량 차이가나고.... 여튼 두 아이 다 출산할때 골반을 틀었는데 첫째는 골반사이에 머리가 끼여서 고생했고 둘째는 오른쪽 골반에 머리가 걸려 나오지 못하는 상태로 세시간 더 진통했다 살려달라고 수술시켜달라했으나 이미 아기가 너무 내려와서 수술도 못하는 상태ㅠㅠ 초음파기계가  분만실로 들어오고 호흡기는 대기상태..  초음파로 아기 상태를 봐 가며 간호사들이 내 손잡고 눈물을 글썽이는..지금은 웃지만 그때는 진짜 나 죽는 줄 알았다. 
(adsbygoogle = window.adsbygoogle || []).push({});
엄마가 그랬었다 아기낳으려면 하늘이 노래진다고 죽는구나 싶어야 아기가 태어난다고 엄마말이 맞았다. 나는 저주받은 골반에 무통 주사도 없이 10시간 이상을 진통하고 아이 둘을 자연분만했다. 친정엄마 없이. 첫째를 낳고는 아빠 얼굴을 보자마자 엄마보고싶다고 애처럼 펑펑울었다. 덕분에 아빠와 시부모님도 다 따라 우셨다... 둘째 낳고는 속으로 울었다 엄마 미안하다며 내가 이제서야 알았다며.... 살아계실때 그리 고생하면서 나를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못한게 너무 죄송했다.

<집중치료실에 처음 갔던날>

출산 후 병실에 올라오고 남편은 차에있던 짐을 가지러갔는데 병실로 전화가왔다. 아기 아빠를 찾았다. 엄마가 아닌 아빠를.. 무슨일이냐 물으니 잠시 신생아실로 오셔서 아기를 좀보시라고한다. 지금 병실에없으니 오면 이야기해서 보내겠다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냥 눈물이 났다. 그 전화가 예사롭지는 않았고 나한테는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게 불안했다. 진정을 못하고 울고있으니 남편이 돌아와서는 일단 나를 진정시키고 신생아실로갔다. 잠시 후 남편 전화. 아기가 과호흡증상이 있어 종합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로 보낸다는 것이었다. 일단 신랑은 의료진과 함께 아기를 태운 엠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괜찮으니 눈붙이고 있으라했지만 나는 남편이 올때까지 또 펑펑 울었다. 아주 통곡을 했다. 내가 잘못해서 아기가 아프다는 생각에 미안해서... 엄마품에 제대로  안겨보지도 못한 내 아기가 안쓰러워서.... 그 후 이틀은 출산 후 내 몸도 추스려지지 않아 아직찬바람부는 3월에 차를타고 30분 이동해야하는 병원에 가는게 무리라 아기를 보지도 못했다. 신랑만 면회시간에 맞춰 다녀왔고 아기는 만져보지도 못하고 사진만 엄청 찍어왔다. 3일째 되는날 나도 신랑따라 갔었다 초유 유축한걸 귀하게 챙겨들고... 출산휴가가 끝난 신랑은 눈치보이지만 외출신청을하고 점심식사도 포기하고 같이갔다. 나 혼자 갈 수는 없었기에...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 있었다. 나는 살짝 손을넣어 발과 다리만 만져보고 왔다 그 순간도 남기고 싶어 사진을 찍어달라 했었다. 여기저기 어떤 장치를 붙이고 눈도가린 내 아기에게 미안해서 또 울었다. 그러다 엄마가 울어서 미안하다며 또 울었다.

<두번째방문. 인큐베이터에서 나옴>

처음 아기를 보고와서 나는 앓아누웠다ㅠㅠ 결국 그 다음날은 못가고 하루걸러 다시갔다. 내가 못갔던날 신랑혼자 다녀왔는데 인큐베이터에서 나와서 바구니같은데 있었다며 엄마를 만나서 아기가 많이 건강해진거같다며 사진을 보여주는데 나는 또 고맙고 미안해서 펑펑울었다 출산후 며칠간 얼마나 울었던지... 눈동자가 튀어나올것 처럼 아팠다. 하루걸러 다시갔을땐 나도 인큐베이터 밖에 있는 아기를 만날 수 있었고 비닐장갑을 낀 채 였지만 약간의 터치도 할 수 있었다. 이 날은 아기 옆에서 울지 않았다. 적은 양이지만 모유를 가지고왔으니 잘 먹어달라 부탁하고왔다.

<세번째 방문. 처음 안고 젖병을 물렸다>

세번째 갔던날. 집중치료실에 들어간지 6일째 정도였던 것 같다. 아기가 배냇저고리를 입고 있어서 어떻게 된건가했는데 엄마가 안고 젖병을 물려보라했다. 너무 떨려서...행복하고 긴장되서.. 난 또 눈물을 삼키며 아기를 안았다. 저 순간은 잊을수가 없다. 출산 후 처음 아기를 안았을 때 만큼이나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그리고 다행히 우리 아기는 8일째에 퇴원을 했다. 과호흡 증상이 있어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 왔으나 모든 검사결과 정상이었고 잘 먹고 소화도 잘시키고 잘 싸고.. 기특하게도 바깥세상에 잘 적응해줬다. 드디어 조리원에서 아기없는 산모라 방안에만 있었던 나는 돌아다니며 아기도 보고 모유수유도 하고 유축도 해서 날랐다. 집중치료실에는 조부모 면회도 불가했고 내가 가는날엔 데리고 가야하고 내가 안가는 날엔 아기가 아무도 안오면 슬퍼할 것 같아 매일 점심시간 회사에 외출신청을 했던 신랑은 3일만에 거기 매일가야하는 거냐는 소리를 듣고 죄인마냥 눈치를보고 다녔다.
이번 사건이 어떻게 된건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전공분야가 생명과학이라 뉴스를 보며 나름의 추측을 하지만 감히 이 곳에 쓸 수는 없다. 내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내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쓴 것은 그 곳에 아이를 둔 부모가 이런 마음이라는 걸 전하고싶었다. 아이를 잃은 부모들이 얼마나 큰 슬픔에 빠져있을지..10달을 뱃속에 품었으나 제대로 앉아보지도 젖을 물리지도 못했을 엄마의 마음이 어떨지 간접적으로라도 느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체하지 말고 원인을 찾고, 사과하고 보상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힘겹게 세상으로 나와 제대로 부모얼굴 한번 보지 못했을 아기들을 위해 기도한다.

<조리원으로 옮겨오던 날>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