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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기념 방송 : 시작과 배경

B.kyung 2020. 5. 28.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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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빵(팟캐스트) 첫 역사 방송으로 시작한 방송.

역사를 잘 알려주는 밥 선생님과 역사를 잘 모르는 엠버의 방송입니다.

 

역사를 성적을 위한 교육을 받은 세대들은 생각보다 기억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외우는 게 아닌 이해하는 역사 방송이기를 바라면서 시작한 방송이라고 합니다.

 

2019년 4월 10일 첫 방송으로 업로드 된 "[에라 모르겠다_1회]100주년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3.1운동 시작에 관련한 간단한 배경 지식을 유튜브 매체로 일부 편집되어 제 업로드했습니다.

 

 

 

[업글튜브  바로가기] 좋아요, 구독 부탁드립니다.

 


 

 

3.1 운동 이란

 

3·1 운동 또는 3·1 만세 운동은 일제 강점기에 있던 조선인들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 한일 병합 조약의 무효와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 운동을 시작한 사건이다. 기미년에 일어났다 하여 기미독립운동, 줄여서 기미운동이라고도 부른다. 대한제국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고종 독살설이 소문으로 퍼진 것을 계기로 고종의 인산일(장례일)인 1919년 3월 1일에 맞추어 한반도 전역에서 봉기한 독립운동이다. 최근, 본 운동의 규모와 영향력을 고려해 3·1 혁명이라고 부르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

만세 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을 민족 대표 33인으로 부르며, 이외에 만세 성명서에 직접 서명하지는 않았으나 직접적, 간접적으로 만세 운동의 개최를 위해 준비한 이들까지 합쳐서 보통 민족 대표 48인으로도 부른다. 이들은 모두 만세 운동이 실패한 후에 구속되거나 재판정에 서게 된다. 약 3개월가량의 시위가 발생하였으며, 조선 총독부는 강경하게 진압했다.

조선 총독부의 공식 기록에는 집회인 수가 106만여 명이고, 그중 사망자가 7,509명, 구속된 자가 4만 7천여 명이었다. 한편 신우익인 신복룡 교수나 일본의 야마기 겐타로 약 50만 명 정도가 3·1 운동에 참여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3·1 운동을 계기로 다음 달인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대한민국 제헌 헌법에서는 3·1 운동을 대한민국 건국의 기원으로 삼아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을 천명하였다.

한편 3·1 운동을 계기로 군사, 경찰에 의한 강경책을 펴던 조선 총독부는 민족 분열책인 일명 문화 통치로 정책을 바꾸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팟빵 : 전체 방송 듣기 

[에라 모르겠다_1회]100주년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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