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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독재 : 부정선거

B.kyung 2020. 5. 2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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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초대 대통령/출처:위키백과

 

이승만(李承晩, 1875년 3월 26일 ~ 1965년 7월 19일)은 조선과 대한제국 및 대한민국의 개화파, 언론인, 정치인이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초대 대통령, 대한민국의 제1·2·3대 대통령이다.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친미 외교와 강경한 반공주의를 국시로 삼아 단독정부의 안정을 도모하였으나, 이후 독재 및 부정선거에 대한 반발에 4.19 혁명 등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 결국 하야하였다.

대한제국 시절 협성회 회보와 독립신문 주필, 교육 계몽운동으로는 독립협회 활동 등을 하면서, 왕정 폐지와 공화국 수립을 도모하였다는 반역의 죄목으로 옥살이를 하였으며(1899년~1904년), 수감 시절 기독교로 개종하고, 독립정신을 저술하였다. 대한제국 말기 사면된 후 밀사로 도미하였다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미국에서 학업을 계속하여 5년에 걸쳐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학사,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일제 하 조선에 귀국하여 교육계몽운동 등을 하다가 탄압을 피해 하와이에서 한인학원과 한인학교 등을 운영하였다. 일제 시대에 독립운동 방법을 놓고 의견이 갈라섰을 때 그는 국내의 사정을 외국에 알리고 양해를 구하는 외교 독립론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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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총리, 한성정부와 각지에서 수립된 임시정부의 수반을 거쳐 1919년 9월 11일부터 1925년 3월 23일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직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 외교위 원부 위원장, 국무위원회 외교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주로 미국에서 외교 중심의 독립운동을 벌였다. 1933년 3월 6일의 제25회 임시 의정원 회의에서 무임소 국무위원에 보궐 당선되었다. 이후 1933년 11월에 다시 임시정부 국무위원에 선임되고 1934년 4월 2일에는 임정 외교위원에 선임되었다. 일제 시대 중반에는 미국 및 스위스 등을 무대로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는 한편 일본 내막 기를 저술하는 등 일본의 미국 침략을 경고하였으며 태평양 전쟁 이후 미군 OSS와 임시정부 간의 연결을 주선하였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미국 체신청에서 발행한 태극기 모양 우표 발행에 크게 기여했으며, 항일 단파 라디오 방송 연설 등에도 참여하였다.

1945년 12월부터 김구·조소앙·김성수 등과 함께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주도하였으며, 반공과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지지, 추진하였다. 대한민국 초대 국회의장을 역임하였으며, 1952년 부산 정치파동에 따른 대통령 직선제 발췌개헌과 1954년 대통령 연임 제한 폐지와 국가주의 경제조항을 시장경제조항으로 바꾸는 사사오입 개헌, 두 차례 헌법 개정을 거치며 대통령을 3회 역임하였다. 1960년에 4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 혁명에 의해 책임을 지고 자진 하야했고, 곧 미국 하와이를 요양차 방문한 후 귀국하지 못하고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장례는 대한민국에서 가족장으로 집행되었으며, 국립 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194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본관은 전주이다.

 

 

[위키백과] 인물 :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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